엔비디아 순환출자, AI 붐이 감춘 위험한 고리

계약서에 적힌 숫자는 화려한데, 정작 은행 잔고는 분기마다 줄어듭니다. 코어위브(CoreWeave)라는 회사의 지난 분기 성적표가 딱 그랬죠. 매출은 1년 만에 112% 폭증해 20억 8천만 달러를 찍었는데, 같은 기간 순현금흐름은 마이너스 47억 달러였습니다. 돈을 벌수록 더 빠르게 돈이 빠져나가는 구조. 이 기묘한 성장의 뒤편에는 엔비디아(NVIDIA)를 정점으로 한 하나의 거대한 자금 순환 고리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월가에서 가장 뜨겁게 논쟁 중인 그 이름, 바로 '순환출자(circular financin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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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억 달러가 돌고 도는 신종 클라우드 생태계

이야기의 주인공은 ‘네오클라우드(neocloud)’라 불리는 신생 사업 모델입니다. 쉽게 말하면, 엔비디아의 최신 GPU를 남들보다 먼저 확보해 하이퍼스케일러(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에게 빌려주는 임대업체인 셈입니다. 부동산 컨설팅 대기업 JLL은 이들의 강점을 이렇게 짚었습니다.

“네오클라우드는 고밀도 GPU 인프라를 수개월 안에 구축할 수 있습니다. 하이퍼스케일러의 데이터센터가 수년씩 걸리는 것과 대조적이죠. 빠른 AI 개발이 필요한 기업에 결정적인 시간 경쟁력을 제공합니다.”

출처: JLL, 「The Rise of Neocloud in the AI Landscape」

대표 주자인 코어위브와 네비우스(Nebius)에 대형 IT 기업들이 쏟아붓는 돈의 규모는 상식을 벗어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들 네오클라우드에 약 60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몰아줬고, 메타(Meta) 역시 코어위브에 352억 달러, 네비우스에 최대 270억 달러, 도합 최대 622억 달러를 약속했습니다. 두 회사의 약정만 합쳐도 1,222억 달러. 여기에 오픈AI와 앤스로픽(Anthropic)까지 더하면 잠재 약정액은 1,450억 달러를 넘어섭니다. 정작 코어위브의 2026년 예상 매출은 126억 달러, 네비우스는 34억 달러에 불과한데 말이죠. 현재 매출보다 한 자릿수 큰 계약이 미리 잡혀 있는 겁니다.

흥미로운 건 커뮤니티의 반응이 정확히 두 갈래로 갈린다는 점입니다. 이 사안이 해커뉴스와 블룸버그에서 다뤄지자, 한쪽에서는 1990년대 말 닷컴 버블 당시 통신장비 업체들이 고객에게 돈을 빌려줘 자사 장비를 사게 했던 ‘벤더 파이낸싱’의 데자뷔라며 경고합니다. 실사용이 뒷받침되지 않자 매출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던 그 사건 말이죠. 반면 경제 논객 노아 스미스처럼 “AI 인프라 구축은 원래 천문학적 비용이 들고, 장기 구매 약정과 금융을 묶는 건 공급을 확보하려는 합리적 선택”이라며 과도한 공포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엔비디아는 왜 자기 고객에게 투자하는가

순환출자의 심장부에는 엔비디아가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코어위브와 네비우스에 각각 20억 달러씩을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투자를 받은 두 회사는 그 돈을 들고 다시 엔비디아로 돌아가 수십억 달러어치 GPU를 사들이죠. 비유하자면,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빌려주고, 그 돈으로 세입자가 다시 건물주의 가게 물건을 사는 구조입니다. 돈은 한 바퀴 돌지만, 장부상으로는 엔비디아의 매출과 네오클라우드의 성장이 모두 ‘진짜 수요’처럼 잡힙니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엔비디아가 코어위브에 제공한 안전장치입니다. 코어위브 데이터센터의 GPU 용량이 자체 고객으로 다 채워지지 않을 경우, 엔비디아가 그 남는 용량을 2032년 4월 13일까지 직접 사주기로 한 계약이 존재합니다. 초기 규모만 63억 달러. 즉 이것은 팔리지 않은 재고를 공급자가 되사주겠다고 보증한 셈입니다. 검색 결과를 종합하면 이런 순환형 거래는 AI 공급망 전체에서 8,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2026년 3월에는 EU 경쟁당국 실무진까지 순환 지출의 위험성을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엔비디아 입장에선 손해 볼 장사가 아닙니다. 최근 12개월 잉여현금흐름이 1,190억 달러로, 애플에 이어 세계 2위인 회사죠. 적은 지분 투자로 향후 수년간 최신 시스템을 사줄 대형 고객을 붙잡아두는 전략입니다. 문제는 반대편입니다. 네오클라우드가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이 고리가 계속 돌아가야 하는데, 매출이 자본지출을 2대 1로 따라가지 못하는 지금의 속도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부를 열어보면: 빚으로 굴러가는 성장 엔진

화려한 매출 성장 뒤의 재무제표는 서늘합니다. 코어위브의 지난 분기 자본지출은 77억 달러, 영업현금흐름은 29억 8천만 달러. 그 격차만큼 현금이 녹아내려 현금 잔고는 한 분기 만에 28.3% 줄어든 22억 7천만 달러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반면 부채는 16.1% 늘어 248억 6천만 달러. 회사는 2026년 한 해 자본지출로만 310억~350억 달러를 쓸 계획인데, 애널리스트들이 추정한 연간 영업현금흐름은 86억 8천만 달러에 그칩니다. 계산기를 두드리면 173억 달러가 넘는 자금 구멍이 남죠. 6월 11일 코어위브가 35억 달러 규모 선순위 채권 발행을 예고한 것도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입니다.

이 빚의 정체가 특히 독특합니다. 코어위브는 ‘GPU 담보 지연인출 정기대출(DDTL)’이라는 방식으로 자금을 끌어옵니다. 비유하자면, 사놓은 반도체 칩과 대형 고객과의 장기 계약서를 통째로 담보로 잡히고 돈을 빌리는 겁니다. 지난 3월 마감한 85억 달러 규모의 DDTL 4.0은 이런 구조로는 처음으로 투자등급 신용평가를 받았는데, 그 근거가 “투자등급 AI 기업과 맺은 장기 계약”이었습니다. 정작 코어위브 자신의 재무 상태는 부실한데, 메타 같은 우량 고객의 계약서 덕분에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된 구조죠. 뒤집어 말하면, 그 우량 고객이 흔들리는 순간 이 마법도 풀립니다. 실제로 5월 마감한 DDTL 5.0은 비투자등급 고객 계약을 담보로 삼은 탓에 더 높은 금리를 물어야 했습니다.

금리라는 외부 변수도 조여옵니다. 3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올해 초 3.6% 아래에서 6월 4.16% 부근까지 치솟았고, 코어위브의 조달 비용도 함께 올라갑니다. 이미 지난 1분기 이자 비용만 5억 3,600만 달러로, 매출의 25.8%이자 조정 EBITDA의 46.3%를 집어삼켰습니다. 번 돈의 절반 가까이가 이자로 빠져나가는 셈입니다. 그나마 경쟁사 네비우스는 현금 93억 7천만 달러에 부채 84억 5천만 달러로 순현금 9억 2천만 달러를 유지하며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올해 225억 달러 자본지출 계획을 감안하면 63억 달러의 추가 자금이 더 필요한 처지는 마찬가지입니다.

결론 및 마무리

이 논쟁의 본질은 ‘코어위브가 망하느냐 마느냐’가 아닙니다. 진짜 질문은,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AI 인프라 수요 가운데 얼마만큼이 최종 사용자의 진짜 필요이고, 얼마만큼이 몇몇 회사끼리 돌려막는 장부상의 수요인가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 순환출자가 위험한 핵심입니다.

앞으로 지켜봐야 할 신호는 명확합니다. 네오클라우드들이 계약한 전력을 실제 가동 전력으로 얼마나 빠르게 전환하는지, 그리고 영업현금흐름이 자본지출을 언제쯤 따라잡는지입니다. 이 두 곡선이 만나기 전까지, 이 산업은 계속 빚을 내거나 주주 지분을 희석하며 버틸 수밖에 없습니다.

닷컴 버블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이번엔 GPU라는 실물 자산과 메타·마이크로소프트라는 현금 부자 고객이 담보로 버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도 잊어선 안 됩니다. 자산 가치와 고객의 지불 능력, 이 두 기둥 중 하나만 흔들려도 정교하게 쌓아 올린 금융 구조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무너집니다. 지금 엔비디아가 돌리는 이 고리가 견고한 선순환일지, 아니면 언젠가 되감길 위험한 매듭일지. 그 답은 계약서가 아니라, 앞으로 몇 분기의 현금흐름표에 적힐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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